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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ndalf의 코카서스유람기(1 봤어요

이제 여행도 막바지에 접어들었어요. 열흘째인 오후, 아쉬움과 함께 바투미를 뒤로하고 버스를 타고 조지아에서 유명한 온천관광지 보르조미로 향했습니다.보르조미는 조지아 중부 카르톨리(Kartli)의 휴양 도시이다.  “인구는 약 16,000명으로 광천수가 유명하며, 무토쿠바리강이 흐르는 계곡의 경관도 일품입니다. 보르조미마을 앞에는 숲과 물이 좋은 보르조미-카라가우리(Borzomi-Kharagauli) 국립공원이 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아마 수안보온천 광릉수목원 정도의 휴양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보르조미는 소련 시절 연방 내에서도 유명한 관광지였습니다. 이곳은 1810년 제정 러시아 시대에 광천수가 발견되어 당시 주지사였던 보론스토프 백작에 의해 휴양지로 개발되었습니다.이후 알렉산더 2세 황제의 동생이었던 미카일 로마노프 공작은 보르조미를 너무 사랑해서 근처에 궁궐을 짓기도 했습니다. 소련 시절 인근에 광천수를 활용한 건강 관련 연구소가 세워지면서 국민 관광지로 큰 인기를 끌면서 연방 전역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왔습니다 지금도 조지아 사람들이 자주 찾는 관광지입니다. 다만 장기간 머물면서 온천과 휴양을 즐기는 현지인과 달리 엇갈리는 관광객들에게는 솔직히 계륵같은 관광지다, 다른 관광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서 방문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실제로 가보면 볼 것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조지아를 대표하는 관광지인데 여기를 땡땡이치고 조지아 여행을 했다는 것도 좀 그런가… 애매한 곳입니다. 보르조미의 소박함은 더욱 화려한 체코의 유명한 온천지 카를로 리발리와 비교된다.[아래 링크 참조]

온천을 좋아한다면 국립공원 입구에서 50분 정도 걸어 들어가면 야외 온천풀이 있습니다. 유료이고 물은 미지근하며 수영복을 입고 들어가야 합니다. 이곳의 고급 호텔인 크라운 플라자에 투숙하시면 호텔 내 온천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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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투미에서 약 5시간에 걸쳐 온천관광지 보르조미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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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자창에서 공원으로 향하는 길, 무떡바리(Mtkvari) 강을 따라 걷는 이 길은 루유엔터테이너벨리(Rustaveli)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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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연예인 벨리 길가의 기념품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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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입구로 가는 길에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이 지역 최고의 모텔인 크라운플라자다. 모텔에는 온천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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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조미 국립공원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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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 들어서면 무덕바리강(계곡)을 따라 자연림 등산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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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정면에서 내려다보는 곳에 작은 산이 있고, 여기에 오르는 케이블카가 있다. 그러나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면 공원 밖으로 나가는 것이지 약간의 경치를 보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일이 없기 때문에 경험자는 볼조미의 케이블카를 타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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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볼조미 광천수를 무료로 나눠주던 중 호기심에서 한 병을 받았는데 한 모금 마셔 금방 끊어버렸습니다. 물맛이… 대장 내시경 때 먹는 관장 약의 맛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금품을 주고 먹는 광천수는 맛이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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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에 좋다는 보르조미 광천수 한국에도 수입해서 팔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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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 입구에는 이렇게 계곡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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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가게와 놀이기구 등이 있어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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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프로메테우스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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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원에 떨어지는 폭포 바로 아래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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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이 있는 지역을 지나면 계곡을 따라 등산로가 있고, 다른 시설은 아무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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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평탄한 길을 가다가 갑자기 길이 좁아지고 험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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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험해진 지점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이렇게 온천수를 활용한 유료 수영장이 있습니다. 물은 미지근합니다. 입구에서 약 50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대부분의 관광객은 여기까지 올라오지 않습니다.  온천을 다녀오신 분들의 평가는 나쁘지 않습니다.미카일 샤카슈빌리(1967~) 전 조지아 대통령이 조금 전에 조지아의 미카일 샤카슈빌리 대통령을 언급하려고 합니다. 조지아의 오늘을 말하기 위해서는 그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1967년 조지아의 수도 트빌리시에서 태어난 그는 2003년 장미혁명(조지아의 2대 대통령이자 소련 전 외무장관이던 세바르드나제의 부정과 부패에 저항해 일으킨 무혈시민 현명)을 통해 2004년 집권해 나름대로 의욕적으로 개혁정책을 폈지만 국민의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고 합니다. 2008년 재선됐지만 조지아 야당과 시민들로부터 지지를 잃었고 심지어 외출도 쉽지 않은 상태에 빠졌습니다. 2008년 8월 남오세티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던 남오세티야인과 조지아인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고 그 과정에서 경찰관 1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 사태를 국민의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여긴 샤카슈빌리 대통령은 군 병력을 남오세티야에 투입하고, 그 과정에서 남오세티야에 유엔평화유지군 자격으로 주군해 있던 러시아군 18명이 사망합니다. 하지만 이는 호시탐탐 조지아를 침공할 명분을 찾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빌미를 주게 됩니다. 푸틴 대통령은 남오세티야 거주 러시아인 보호 명목으로 대규모 병력으로 조지아를 침공했다가 불과 닷새 만에 대패한 샤카슈빌리는 서둘러 프랑스를 통해 평화협정을 맺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아가 독립을 선언하고 조지아를 떠났다는 이야기는 얼마 전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무능한 대통령의 판단착오가 불과 며칠 만에 국토의 20%를 상실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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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황을 그린 한 유럽 신문의 만평. 분쟁지역이었던 남오세티야를 조지아군이 공격하지만 결국 러시아를 등진 남오세티야+러시아 연합군이 승리해 조지아는 만신창이가 된다는 내용. 당시는 베이징 올림픽 기간이었기 때문에 세계인들은 조지아 분쟁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결국 그는 3기에 실패하고 2013년 퇴임합니다. 그는 재임기간 마지막 해에 권력 남용과 사기 혐의로 기소되어 처벌을 피하기 위해 퇴임 후 우크라이나로 망명했습니다. 샤카슈빌리의 친구였던 우크라이나의 폴로셴코 대통령은 2015년 그에게 우크라이나 시민권을 주고 오데사 주지사로 임명했습니다. 그러나 그 후 그는 다시 폴로셴코 대통령과도 사이가 나빠져 2016년 주지사에서 해임됐고, 2017년 우크라이나 국적까지 박탈당했습니다. 계속해서 본국 송환을 요구하는 조지아 당국의 감시를 피해 그는 폴란드를 거쳐 아내의 출신국인 네덜란드로 가서 도피생활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런 최악의 대통령! 좋은 조건에서도 조지아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자가 지도자라고 해서 나라를 통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샤카슈빌리도 긍정적인 평가를 받는 부분이 있으니 바로 경찰개혁입니다.샤카슈빌리의 경찰 개혁, 샤카슈빌리 대통령은 2004년 집권 직후 경찰 개혁에 손을 댔습니다. 부정부패의 상징이었던 경찰개혁을 위해 내무장관과 함께 경찰 3만 명을 한꺼번에 해고한 것입니다. 그리고, 더럽고 개혁의식이 강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경찰관 3만명을 재임용했습니다. 생활고가 부패의 원인이라고 생각한 그는 경찰관 급여를 20배 이상 올리는 동시에 50달러 이상의 뇌물을 받으면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법규도 마련했습니다. 경찰의 인력 교체가 진행되는 석 달 동안 조지아에서는 특별한 사건 사고가 없었고, 오히려 시민들은 경찰의 부재를 반겼습니다. 샤카슈빌리는 또 경찰의 모든 일을 투명하게 처리한다는 뜻으로 경찰서의 외관을 모두 투명유리로 설치했습니다. 그 결과 유럽에서 가장 부패한 조지아 경찰은 유럽에서 가장 깨끗하고 신뢰받는 경찰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조지아가 유럽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는 평가도 그래서 나온 겁니다. 그러나 과연 그의 경찰개혁은 성공일까. 샤카슈빌리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이 하나 있었으므로, 그것은 비밀 경찰입니다. 그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정보, 비밀경찰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반대파를 탄압하는데 활용했고 결국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그가 권좌에서 쫓겨나는 데 일조했습니다. 또한 그는 투명유리 건축을 좋아해서 경찰서는 물론 다른 건축물에도 강요했습니다. 트빌리시 시내의 자유의 다리(Freedom Bridge)가 그랬고, 나아가 발가티 대성당 복원 과정에도 불구하고 성당 뒷면에 투명유리로 된 엘리베이터 설치를 요구해 이 성당이 세계문화유산에서 제외되도록 하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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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카슈빌리 대통령의 명으로 지어진 조지아의 경찰서 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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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있도록 투명유리를 외벽에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