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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흥 하중동 출신 국민영화배우 황정순 기념관 짱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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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어머니”인 고 황정순을 추모한다. 한국 영화 중, 영원한 어머니, 국민 영화 배우 팬 정순은 시흥군 수암 면 하중동 그와은곡 마을에서 일제 시대의 1925년 8월 20일 출생했다. 당시 이곳 시흥의 하중동 마을은 농사일을 제외하고는 먹고 살 수 없는 빈곤지역이었다. 주민들의 대개가 하늘을 바라보는 천수답 변방지인 벽촌골짜기의 관곡마을에서 장수황씨 집안의 막내딸로 태어났다. 어린 소녀시대는 이곳 마을에서 가난했다. 서울의 친척집에서 14세로 영화 여고를 졸업하고 1940년 15세의 어린 나이에 동양 극장 전속 극단인 청춘 극장에 입단했고 연기 생활을 시작하여 50년간 무대와 스크린, 브라운관을 종횡무진 누비며 배우로 살았다. 1940년 데뷔했으며, 총 430편의 영화에 출연했고 250개 이상의 연극 무대에 올랐다. 1986년<88파트너>을 끝으로 은퇴한 팬 정순은 서울 예술 대학 설립에 노력하고’팬 정순 장학회’를 설립하고 후배 양성을 도왔다 간혹 시흥의 고향 마을에 와서 마을 장로들과 총부모를 만나 인사를 나누는 것은 물론, 마을 행사에 반드시 금일봉을 지원하고, 마을 장학회会에 장학기금을 지원하는 등 꾸준히 고향 향수를 달래왔다. 한국 영화의 어머니 황정승은 한국영화사에서 가진 영향력은 수치로 표현되는 단순한 이력보다 훨씬 깊고 넓다고 할 수 있다. 즉, 연극과 영화, 무대예술과 영상예술의 초기 연기자이자 마지막 남은 대모이자 역사였다. 이 분야에서 그대로 살아있는 영화예술의 증인이었다. 그녀가 가진 토속적이고 부드러운 이미지는 우리가 상상하는 전통적인 어머니의 모습과 어울렸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 그러한 어머니의 상을 만들어냈다. 한국 영화계의 “별”을 잃었다. 그가 2014년 1월 17일 89세로 작고할 때까지 출연한 수백개의 연극과 영화는 물론 각종 영화제에서 주·조연 여배우상, 훈장 등을 열거하지 않아도 팬 정순이 이 나라의 연극계 영화 예술계에 남긴 발자국은 실로 대단하다. 그리고, 온 국민에게 그녀가 남겨준 영원한 한국의 주부상, 여성상은 앞이나 뒤에도, 또 누군가가 흉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영화계의 거두 김수영 감독은 “어떤 배역이든 걸음걸이, 말투, 표정 등 온전히 그 인물이 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던 배우”라며 “전문교육을 따로 받지 못했던 시대에 연기를 몸으로 익혀 배우의 지적세계를 넓혀왔다”고 회고했다. 한국 영화의 대부인 임권택 감독은 젊었을 때부터 엄마나 할머니의 역할을 주로 맡았고, 우리 마음속에 韓国한국 영화의 엄마イメージを라는 이미지를 새겼다”며 韓国映画한국 영화계가 꼭 기억해야 할 큰 별을 잃었다。고 애도의 뜻을 표했다. 또, \”불편할 때도 부산국제영화제는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는 등 영화계 행사마다 영화 속 이미지처럼 인자하고 배려심 많은 모습으로 후배들을 지지했다\”며 해방 전부터 활동했다. ‘한국영화의 어머니’이자 명실상부한 한국영화의 역사라고 추모했다. 70년에는 서울 예전의 이사도 역임하고 후진 양성에 72년 고향 하중동에 ‘팬 정순 장학회’를 설립하고 중·고교생 40년 현재까지 장학금을 지원하면서 어머니 같은 사랑과 보살핌으로 고향 사랑을 실천했다. 황정순 기념관은 그의 고향 시흥하중동에 지어야 옳다. 그러나 팬 정순은 70년간 최정상의 자리에서 스타로서 화려한 인생을 살아온 원로 여배우의 인생의 이면에는 외로운 삶이 숨어 있었다. “우리 시대의 영원한 어머니로 살아온 분”는 1951년 10월 6.25전쟁 중에 당시 26살 노처녀로서 아내를 잃은 의학 박사 이영복과 결혼했다. 신랑 이 박사는 이미 3남매를 둔 홀아비였다. 그치만 결혼한 의붓 자식 3남매를 지송콧 길렀는데, 가꾸어 주던 늙은 어머니를 무시했다. 남편도 일찍 사별하고 만다. 2014년 그가 타계한 뒤 그의 삼청동 주택 등 80억원대의 재산에 대한 유산 상속 문제로 법정과 매스컴에서 화제가 됐다. 그 후 법적 상속인은 양자로 입적된 의리의 손자(의붓 아들의 아들)와 우에쵸카의 손녀, 이 손녀의 동생 등 세명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5년이 든 지금까지도 분쟁 중이다. 고인이 타계하기 전, 그렇게 원했던 “기념관”은 재산 다툼에 물거품이 될 것 같다. 필자는 한국의 지역 출신이며,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우리 시대의 영원한 어머니”로 살아온 황정순 기념관 건립을 강력히 시흥시에 요청한다. 시흥시는 지금까지 기념관이나 박물관 하나 없는 예술문화의 불모지로 방치할 것인가? 외면하는 것인가? 유사 이래 문화예술이 없는 민족은 지구상에서 산 역사를 봐왔다. 시흥의 이미지와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라도 “황정순 기념관”은 시흥의 하중동에 유치해야 한다. 마침 하중동 개발 예정지로 지정된 그와은곡지의 맞은 편(아파트 맞은 편)의 산과 평지가 3천평을 넘는다. 이곳이 어렸을 때 황정순이 놀러 다녔던 야산이다. 황정순의 고향에 그의 기념관! 관곡지와 연화단지와 연결되어 수왕호를 잇는 관광벨트는 복 받은 요지가 될 것을 확신하고 있다. 근처 안산시에 있는 “상록수 최용신 기념관”에 가보자. “황정승 기념관”을 왜 서둘러야 하는지를 “한국영화의 어머니”를 시흥으로 불러야 한다. 2019년에 이를 적극 추진하는 것을 제안한다.